폐 결절·흉수에 암 의심…60대 남성의 반전 진단
수개월 동안 피가 섞인 가래가 나와 병원을 찾은 60대 남성이 폐암이 아닌 기생충 감염 진단을 받은 사례가 알려졌다. 검사에서 폐 결절과 다량의 흉수가 발견돼 폐암이 의심됐지만, 정밀 검사와 수술을 통해 확인된 원인은 폐흡충이었다. 전문가들은 날것이나 덜 익힌 식재료를 먹는 식습관이 기생충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민물게장과 생간 등 생식 섭취에 주의를 당부했다.18일 의료계에 따르면 60대 남성 A씨는 수개월간 혈담, 즉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는 증상으로 지역 의료기관을 찾았다. 검사 결과 오른쪽 폐 아래쪽에서 약 18㎜ 크기의 결절이 발견됐으며, 흉강에는 약 1.5L에 달하는 흉수가 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폐암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나타나면서 A씨는 큰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A씨는 정밀 검사를 진행했지만 암으로 확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흉강경 수술인 비디오 보조 흉강경 수술(VATS)을 시행했다. 그 결과 폐암 세포 대신 기생충인 폐흡충의 알이 확인됐고, 최종적으로 폐흡충증 진단이 내려졌다.
A씨는 기생충 알이 자리 잡고 있던 두꺼운 염증막을 제거하고 구충제 치료를 받았다. 이후 특별한 합병증 없이 회복해 수술 6일 만에 퇴원했다. 폐암으로 의심했던 병변의 원인이 기생충 감염으로 밝혀진 사례다.
이번 사례는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전영정 교수가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공식 학술지인 ‘흉부외과학회지(Journal of Chest Surgery)’에 보고했다. 의료진은 폐 결절이나 흉수 등 폐암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나타나더라도 환자의 증상과 식습관, 감염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흡충증은 폐흡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주로 감염된 민물산 갑각류를 날것으로 먹거나 충분히 익히지 않은 상태로 섭취했을 때 감염될 수 있다. 기생충이 폐에 침입하면 기침이나 가래, 혈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폐 이외의 신체 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복부와 늑막, 간, 뇌, 피하 조직 등 다양한 부위로 침입할 가능성도 있다.
폐흡충증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소외열대질환(NTDs)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는 국내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발생했던 질환이지만, 감염 사례는 크게 줄었다. 1960년대에는 감염자가 약 2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8년 기준 연간 진단 건수는 400건 미만으로 감소했다. 현재는 드문 질환으로 여겨지지만, 특정 식습관에 따라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민물게장처럼 민물산 갑각류를 날것으로 먹는 음식은 폐흡충 감염과 관련이 있다. 소의 생간을 비롯해 익히지 않은 육류나 수산물을 섭취할 때도 식품의 종류와 감염 위험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영정 교수는 기생충 질환을 과거의 병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생식을 즐기는 식문화가 이어지는 만큼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든 게장이나 해산물이 폐흡충 감염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폐흡충의 중간 숙주는 민물산 갑각류이므로 민물게장과 바다에서 잡은 꽃게로 만든 게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판매하는 바다 꽃게장은 폐흡충 감염 경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식재료의 종류와 출처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전 교수는 폐 결절이 발견됐을 때 기생충 감염도 가능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환자가 민물게장이나 생고기 등 날것을 먹은 경험이 있다면 진료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섭취 이력은 감염 가능성을 판단하고 적절한 검사를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안전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식재료를 구매하고 보관하는 과정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육류와 해산물은 위생 관리가 확인된 유통처에서 구입하고, 상온에 장시간 방치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로 조리하지 않을 식재료는 적절한 온도에서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해야 한다. 기생충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식재료를 충분히 익혀 먹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특히 노약자와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 감염에 취약할 수 있는 사람은 소의 생간이나 내장류처럼 기생충 감염 위험이 있는 식품을 날것으로 먹는 일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기생충이나 병원체 감염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생식 자체에 주의해야 한다.
생식을 먹은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침이나 혈담이 지속된다면 단순한 호흡기 증상으로 넘기지 말고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진료를 받을 때 민물게장이나 생고기 등 날것을 먹은 경험이 있다면 의료진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폐 결절이나 흉수 등 이상 소견이 발견됐을 때도 암뿐 아니라 감염성 질환 등 다양한 원인을 함께 살펴야 정확한 진단에 이를 수 있다.
폐흡충증은 과거보다 드물어졌지만, 생식 습관에 따라 여전히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식재료의 출처를 확인하고 충분히 익혀 먹는 습관을 들이는 한편,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섭취 이력과 증상을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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