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년 전부터 인류는 달렸다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듯, 대한민국의 달리기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러닝 인구 천만 시대라는 말이 더는 어색하지 않게, 도심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땀 흘리는 주자들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주요 마라톤 대회의 참가권은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 일쑤이며, 고가의 장비가 포함된 패키지 상품까지 등장하는 등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이러한 열기 속에서 '나도 한번 뛰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부상 걱정, 적지 않은 나이, 과거의 디스크 질환, 혹은 타고난 운동 신경이 없다는 자책감 등 각자의 신체적, 심리적 장벽이 발목을 잡는다. 달리는 모습이 어색해 보일까 하는 타인의 시선 역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달리는 즐거움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왔거나, 반복되는 부상으로 신체 활동을 포기했던 사람조차 꾸준한 달리기를 통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변화를 이뤄내기도 한다. 이는 달리기가 특정인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의 영역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근거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신체가 다른 어떤 영장류보다 오래 달리기에 적합하게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달릴 때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는 신체 구조, 상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강력한 둔근, 뛰어난 탄성을 지닌 아킬레스건 등은 모두 장거리 달리기를 위한 인류의 진화적 산물이다.

이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기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설명한다. 자전거 타기나 골프처럼 균형감각과 정교한 기술을 '학습'해야 하는 운동과 달리, 달리기는 지난 30만 년의 인류 역사 동안 유전자에 깊숙이 각인된 '본능'에 가깝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이 없던 인류가 끈질긴 추격으로 사냥에 성공하며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달리기 능력에 있었다.
따라서 체력 부족이나 나이, 과거의 부상 이력 때문에 달리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 물론 현재 통증이 있거나 치료 중인 상태에서 무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가벼운 조깅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 상태만 허락된다면, 우리 몸속에 잠재된 위대한 장거리 주자의 본능을 믿고 문밖으로 나서 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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