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문을 열었지만, 예년과 달리 계약 소식 대신 구단들의 깊은 한숨 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전력 보강을 위한 유일한 기회인 만큼 치열한 물밑 경쟁이 예상됐으나, 상식을 뛰어넘는 선수들의 몸값에 구단들이 사실상 '보이콧'에 나선 듯한 모양새다. 이번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했던 A구단 관계자는 "상상 이상의 몸값에 선수를 잡는 것이 맞나 싶다"며 "이러다간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팀의 제안을 명분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예상 몸값에 구단 내부는 충격을 넘어 허탈감마저 느끼는 분위기다. 시장의 과열이 합리적인 투자를 가로막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번 FA 시장의 최대어로는 유격수 박찬호와 강타자 강백호가 꼽힌다. 특히 주전 유격수 보강이 시급한 팀들이 많아 박찬호의 인기가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장의 평가는 과열을 넘어 광기에 가깝다. 그의 몸값으로 4년 총액 100억 원이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선수임은 분명하지만, 수비형 선수가 100억 원을 받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고개를 젓고 있다. 불과 작년 심우준이 50억 원에 계약했을 때도 '오버페이' 논란이 거셌던 것을 감안하면 비상식적인 금액이다. LG 트윈스의 우승을 이끈 김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이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는 선수에게 2년 25억 원을 넘어선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오버페이'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KBO리그 구단들의 독특한 운영 구조에 있다. 대부분의 구단이 모기업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구단주가 자기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것과 같은 신중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의 성적이 감독과 프런트 수뇌부의 생존과 직결되는 구조 속에서, 객관적인 선수 가치 판단보다는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출혈 경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실력보다 시기나 상황적 운에 따라 대박을 터뜨리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시장 전체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터무니없이 치솟는 몸값에 대한 부작용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에이전트 시대를 맞아 선수들의 요구액이 도를 넘어서자, 일부 구단들은 일찌감치 대어급 선수 영입을 포기하고 준척급 매물로 눈을 돌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나친 오버페이 여론은 모기업의 눈치를 보게 만들어 구단의 지갑을 닫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며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는 구단이 나타나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향후 그 선수가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쏟아지는 비난까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