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신비로운 나라 네팔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전통이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불과 32개월 된 어린 소녀 아리야타라 샤카(Aryatara Shakya)가 새로운 쿠마리로 선출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뉴욕포스트와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이 특별한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며,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네팔의 독특한 문화를 조명했다.

 

쿠마리는 힌두교와 불교 신자 모두에게 깊이 숭배받는 존재다. 카트만두 계곡의 토착민인 뉴아르(Newar) 공동체 중 샤카(Shakya) 가문 출신의 어린 소녀만이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쿠마리 선출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보통 2세에서 4세 사이의 소녀 중 흠 없는 피부, 윤기 나는 머리카락, 맑은 눈, 가지런한 치아를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신의 화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새로운 쿠마리로 뽑힌 아리야타라 샤카는 선출 직후 가족과 수많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카트만두 거리를 행진했다. 그녀가 사원 궁전으로 입궁하는 동안, 신자들은 꽃과 돈을 바치고 그녀의 작은 발에 이마를 대며 경의를 표하는 등 신성한 존재에 대한 깊은 믿음을 드러냈다. 아리야타라는 오는 2일, 네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인사들과 신자들에게 공식적인 첫 축복을 내릴 예정이다.

 

딸의 운명적인 변화를 지켜본 아버지 아난타 샤카는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제 딸이었는데, 오늘은 여신이 됐다"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그는 아내가 임신 중 여신이 되는 꿈을 꾸었다며, 그때부터 딸이 특별한 운명을 가질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쿠마리의 삶은 영광만큼이나 고독하고 특별하다. 쿠마리로 선출된 소녀는 사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소수의 지정된 친구들과만 교류할 수 있다. 1년에 단 몇 차례 열리는 축제 때만 외출이 허용될 뿐, 세상과의 접촉은 철저히 제한된다. 이처럼 특별한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사춘기가 되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 후에는 일반적인 학교생활이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네팔 민속 신앙에는 전직 쿠마리와 결혼한 남성은 요절한다는 미신이 있어, 많은 전직 쿠마리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기도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에도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쿠마리도 개인 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기본적인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은퇴 후에는 정부로부터 매달 약 110달러(한화 약 15만원)의 연금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받고 있다. 이는 고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쿠마리들의 인권과 미래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세 소녀 아리야타라 샤카는 이제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으로서 신성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녀의 작은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과 함께, 네팔의 쿠마리 전통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다.